죽음을 앞둔 일상 속 찾아온 설렘
늙은 아버지와 함께 살며 동네에서 작은 사진관을 운영하는 남자 주인공 정원(배우 한석규)은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다. 하지만 정원은 그 사실에 비통해하거나, 마냥 절망하고 있지는 않는다. 그냥 자신의 병을 알기 전과 다름없이 하루하루 평온한 일상을 살아간다. 그러던 어느 날 주차단속요원으로 일하는 다림(배우 심은하)이라는 여자가 정원의 사진관에서 급한 사진이라며, 사진 현상을 해달라고 말하고 가버린다. 다림이 맡긴 사진이 완성되었을 즈음 창밖을 바라보니, 다림이 나무 그늘 밑에서 사진이 나오기를 기다리고 앉아있다. 정원은 기다리고 있는 그녀에게 다가가 아이스크림을 건네며 대화를 나눈다. 그리고 동네에서 자주 마주치게 되며 둘의 사이는 자연스럽게 가까워지게 된다. 이제 다림은 정원의 사진관에 자연스럽게 아무 때나 찾아간다. 무더운 여름날 일하다가 더위를 식히기 위해서 정원의 사진관에 들어가 선풍기 바람을 쏘이며 쉬어가기도 하고, 아이스크림을 같이 나누어 먹으며 소소한 이야기도 하고, 자신의 카메라를 고쳐 달라며 찾아오기도 한다. 정원은 길을 지나가다가 무거운 짐을 들고 가는 다림을 보고 다림의 짐을 자신의 스쿠터에 실어 주기도 하고, 비 오는 날 서로 우산을 씌워주며 같이 걷기도 한다. 그리고 이제 둘은 놀이공원에 가서 놀이기구도 타며, 데이트를 한다. 돌아오는 길에 정원은 자신이 군대 시절 겪었던 무서운 이야기를 다림에게 해주는데, 그 이야기를 듣던 다림은 정원에게 팔짱을 끼며 자연스럽게 마음을 표현한다. 이제 막 사랑이 시작되는 단계의 설렘. 다음 날 다림은 설레는 마음으로 정원의 사진관을 찾아갔지만 정원의 사진관은 문이 닫혀있다. 다림은 자신에게 아무런 말도 없이 사진관 문을 열지 않은 것이 서운했지만 내일 다시 오기로 하고 그냥 돌아간다. 하지만 정원의 사진관은 며칠이 지나도록 계속 문이 닫혀있다. 그가 다시 나타나기만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던 다림은 그에게 자신의 마음을 담은 편지를 써서 문틈 사이로 전달해보기도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그는 소식이 없다. 사실 정원은 지난밤 의식을 잃고 쓰러져 병원에 입원한 상태였지만 이 사실을 알리가 없는 다림은 시간이 지날수록 자신에게 아무런 말도 없이 사라진 그가 너무 밉게 느껴진다. 급기야 그녀는 그의 사진관 유리에 돌을 던져버리고, 한동안 그곳을 찾지 않는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흘러 계절이 바뀌게 되고, 다림은 다시 사진관을 찾는다. 그리고 정원의 사진관 유리에 그가 찍어줬던 자신의 사진이 걸려 있는 것을 발견한 다림은 다시 환하게 웃는다.
사랑을 간직한 채 떠날 수 있게 해 준 그녀
정원은 쓰러진 그날 이후로 깨어나지 못한 채 한참을 병원에 있었다. 그리고 병원에서 나온 그는 그에게 얼마 남지 않은 시간 동안 조금씩 자신의 주변을 정리하려 한다. 사진관 유리 밖으로 그토록 보고 싶었던 그녀가 보이는데도, 그는 눈물을 삼키고 아무 말도 할 수가 없다. 그리고 그는 그녀와의 사랑을 간직한 채로 그렇게 세상을 떠난다.
단순한 멜로 영화는 결코 아니다. 추천 영화
이 영화는 멜로 영화라고 하기에는 그 흔한 포옹씬이나 키스신도 없다. 스킨십이라고 한다면 다림이 정원이가 해주는 무서운 이야기를 들으면서 정원의 팔짱을 끼는 정도가 전부이다. 둘이 본격적인 연애를 시작하기도 전에 남자 주인공은 죽음을 맞이하게 되고, 정원과 다림은 제대로 된 연애조차 하지 못하고 끝난다. 이미 첫 설정부터 시한부 인생의 남자 주인공이었기에 이루어지지 못하고 끝날 수 있다고 생각이 들 수는 있지만, 내가 생각하기에 이영화는 이루어지지 못하는 사랑 이야기가 중심이라기보다는 사람의 인생이란 무엇일까를 생각해보게 하는 예술 영화 같다는 생각이 든다. 정원이 죽음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사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 세상 어느 누가 자신의 죽음을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일 수가 있을까. 운명을 받아들인 듯한 정원은 자신보다 더 슬퍼할 주변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아무렇지도 않은 척 덤덤하게 죽음을 준비하려고 했지만, 다림이라는 여자가 나타나면서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이 너무나 힘들어진다. 그는 그녀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고 죽지 않고 너무나 살고 싶다. 하지만 더 힘들어지기 전에 그녀를 놓아주어야 하는 것을 그는 알고 있다. 그녀가 자연스럽게 자신을 잊어버릴 수 있도록 그녀에게 모질게 대해야만 하는 그의 마음은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보다 더 힘들었을 것이다. 이 영화의 가장 큰 특징은 절대로 관객에게 슬픔을 강요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다림과 정원이 함께 있으면서 행복해하는 모습들을 보거나, 시한부의 삶을 사는 정원의 담담한 일상을 보면서 어느 순간 눈물을 흘리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수도 있다. 그리고 심은하배우 미모의 리즈 시절을 보고 싶다면 8월의 크리스마스를 보기를 추천한다.